[일상] 움벨트 ( 9 판 )
움벨트
Umwelt
같은 공간, 다른 세계
1. 개요
사람과 돌고래. 함께 하는 것 같지만 이 순간 둘은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
움벨트(Umwelt)란 독일어 'Um(둘러싸인/주변around)'과 'welt(세계/환경world/sphere)'의 합성어로써 말 그대로 주변 환경이라는 뜻이다. 벨트가 객관적인 세계를 뜻한다고 본다면 움벨트는 주로 '자기 중심적 세계'라고 번역한다.
이 용어는 야콥 폰 웩스쿨(Jakob von Uexküll)과 토마스 A. 세벡(Thomas A. Sebeok)의 기호학 이론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특히 웩스쿨의 1934년 작 『동물과 인간 세계로의 산책Mondes animaux et monde humain』으로 인해 널리 알려졌다. 웩스쿨은 이 책에서 곤충이나 동물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리고 모든 동물들이 경험하는 세계가 아닌 개개의 동물들 각각 자신들이 느끼는 감각세계를 움벨트라는 용어를 써서 정의했다.
이곳에서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 실제 책을 볼 수 있다.
2. 움벨트
Jakob Johann von Uexküll, 1903 (1864.9.8 ~ 1944.7.25)
움벨트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자 동물행동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웩스쿨은 주관적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개나 고양이처럼 우리와 가까운 포유동물뿐만 아니라 파리, 말미잘, 진드기, 성게, 아메바, 매 등 그가 궁금히 여겼던 존재는 아주 많았다. 또한 공간뿐만 아니라 각각의 존재들이 느끼는 시간감각까지도 관심을 가졌다. 그 중 진드기에 대한 묘사가 유명한데, 다음과 같다.
알에서 덜 자란 상태의 아주 작은 동물이 나왔다. 다리 한 쌍과 여섯 개의 기관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도 진드기는 방울뱀 같은 냉혈동물을 공격할 수 있다. 풀잎 위에 앉아 있다가 냉혈동물의 몸에 잠복하는 것이다. 여러 번 탈피를 한 뒤, 진드기는 없던 기관을 만들고, 짝짓기를 하고, 온혈동물을 찾아 사냥을 떠난다.
짝짓기를 한 뒤, 암컷은 키 작은 관목을 타고 올라간다. 그러고는 작은 포유동물 위로 떨어지거나, 나무를 스쳐 가는 좀 더 큰 동물에게 휩쓸려 갈 만한 위치에 있는 나뭇가지를 찾아 매달려 있는다.
눈이 없는 진드기는 피부의 감광성에 의해 관목 감시탑으로 향한다. 눈이 없고 귀가 안 들려도 길거리의 무법자 암컷 진드기는 가까이 다가오는 희생자를 후각으로 알아차린다.
모든 동물의 피부 샘에서 발산되는 부티르 산의 냄새가 진드기에게 감시탑으로부터 아래로 몸을 날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몸을 날려 따스한 것에 착륙하면, 암컷은 훌륭한 온도 감각으로 온기를 알아차린다. 이렇게 해서 암컷은 먹이인 온혈동물에게 다가간다. 이제 털이 없는 곳을 찾는 일만 남는다. 암컷은 털이 없는 곳을 깊이 파고 들어가 굴을 만들고 따뜻한 피를 배부르게 빨아 먹는다.
얇은 인공막에 피 이외의 액체를 넣고 실험해 보면, 진드기의 미각이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일단 그 막에 구멍이 뚫리면, 암컷은 어떤 액체든지 온도만 적당하면 빨아 대기 때문이다. 부티르 산의 자극이 작용한 뒤 차가운 물체에 떨어지면, 암컷 진드기는 먹이를 놓치고 다시 감시탑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진드기가 배부르게 먹은 동물의 피는 진드기의 마지막 식사이다. 이제 암컷에게는 땅으로 떨어져 알을 낳고 죽는 일만 남아 있는 것이다.
(중략)
암컷 진드기가 개간한 숲에 있는 한 나무의 가지 끝에 꼼짝 않고 매달려 있다. 자세를 보아하니 지나가는 포유동물 위로 떨어질 태세였다. 포유동물이 지나갈 때까지는 환경 속의 어떠한 자극도 암컷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알을 낳기 전의 암컷에게는 포유동물의 따스한 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략)
진드기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 아래로 운 좋게 포유동물이 지나가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숲에 잠복해 있는 수많은 진드기들은 이러한 상황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한다. 때문에 자기가 있는 쪽으로 먹이가 다가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암컷은 오랫동안 먹지 않고도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로스토크의 동물연구소에는 18년 동안 굶주린 진드기가 아직도 살고 있다. 자그마치 18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아 낼 수 없는 세월이다.
(중략)
18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는 세상을 견디는 능력은 가능성이라는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는 동안 여러 시간을 차단당하는 것처럼, 암컷 진드기도 기다리는 동안 수면에 가까운 상태로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진드기의 세계에서, 시간은 여러 시간 동안 멈춰 있다기보다 한 번에 수년 동안 정지해 있는 것이다. 부티르 산 징후가 암컷을 깨워 다시 활동하게 하고 나서야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이렇듯 웩스쿨은 움벨트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의 책을 통해 서술해놓았다. 다만 이 책은 현재 한국어 번역본은 나와있지 않아 프랑스어 원본이나 영역본을 구해야한다.
그는 본인의 저서에서 다양한 움벨트를 반영하여 아래의 그림을 그렸다.
Pl. 6은 집게와 말미잘이 본 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똑같은 '집게'와 '말미잘'의 상황이지만 집게가 처한 상황에 따라 말미잘을 다르게 본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
맨 위의 상황은 집게에게 집이 있고 말미잘을 발견했을때의 상황으로 이때에 집게는 말미잘을 집 위에 얹는다. 이동을 할 수 없는 말미잘에겐 다리가 되어주고 마비침이 없는 집게는 말미잘이 훌륭한 공격무기가 된다.
가운데 상황은 집게에게 집이 없는 경우이다. 이 경우 집게는 말미잘을 집으로 인식하여 말미잘 안으로 들어가서 껍데기로 사용하려고 한다.
아래 상황은 집게에게 집도 있고 말미잘도 있지만 오랫동안 먹이를 먹지 못한 경우이다. 이때에는 말미잘을 먹거나 공격하기도 한다.
Pl. 7a ~ 7c의 상황은 각각 사람, 개, 파리가 본 집 안 풍경을 나타내고 있다.
Pl. 7a. La Chambre de l'homme
사람의 집은 모든 것이 다 보인다. 어쨌든 사람이 필요해서 다 가져다 놓은 것들이고 우리는 모든 것의 용도를 알고 있다. 이때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지는 물체가 된다.
Pl. 7b. La chambre du chien
개의 집은 조금 상황이 다르다. 개에게는 뛰어오를 수 있는 소파, 인간이 주로 앉는 의자, 음식이 올려져 있는 접시만의 개의 움벨트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며 서랍장과 책꽃이 같은 물체는 벽과도 같다. 또한 개도 밝고 어두움을 인식하므로 전등 또한 개의 움벨트에 존재한다.
Pl. 7c. La chambre de la mouche
파리의 집은 많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파리에게 중요한 것은 음식과 빛 단 두 종류의 것들이다. 이것들만이 파리의 움벨트에서 의미를 가지는 물체가 되며 나머지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그것이 의자든 소파든 아무 상관이 없다. 파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똑같다. 더군다나 파리는 대략 50cm 앞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요는 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모두 자신의 움벨트에서 사물을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웩스쿨은 당연히 인간에게도 움벨트 개념을 적용시켰으나 이것에 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Josef Pieper가 대표적인 인물로 사람은 Welt에서 살며 식물과 동물은 Umwelt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허나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이 움벨트개념을 이용해 '관념적으로' 사람 역시 자신의 움벨트에 갇혀 있으며 이때문에 여러 갈등이 일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3.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박쥐가 된다는 것. 그것은...
What is it like to be a bat?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것일까?
이것은 꽤 오래된 논증으로 미국의 철학자 토마스 나겔의 저서가 했던 질문이다. 1974년 The Philosophical Review에서 처음 제기되었으며 1979년의 Mortal Questions에도 나온다. 핵심은 인간은 감지할 수 없는 초음파에 의한 반향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박쥐가 되는 것이란 대체 어떤 느낌일까 묻는 것으로 의식에 대한 가장 널리 인용되며 영향력있는 사고 실험의 한 가지로 꼽힌다.
움벨트에 대해 탐구하다보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마주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박쥐에게 움벨트를 적용해보면 우리가 눈으로 세상을 보듯이 온통 초음파의 반향으로 이루어진 완전히 다른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박쥐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Sonar Vision 혹은 Daredevil Vision이라고 알려진 장면. 극 중 배트맨은 고담시의 모든 핸드폰을 해킹하여 이러한 영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불법적인 일을 해줘야 다크나이트라고 불리게 된다!
물론 이러한 간접적인 장치로 그럴듯한 영상을 만들어내지만 인간인 우리는 결코 박쥐가 느끼는 그 의식을 체험할 수 없다. 이 간단해보이는 질문이 아직까지 흥미로운 질문을 제시하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겔의 질문에는 오해사항이 조금 있는데 바로 '인간으로써의 박쥐'가 아니라 '박쥐로써의 박쥐'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뇌를 가지고 박쥐가 된다고 상상하면 곤충을 먹는다는 것이 역겹게 느껴질 것이고 날때는 재미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나겔은 진짜 박쥐의 뇌로써 박쥐가 되는 것을 질문하고 있다. 박쥐의 뇌를 가진 생물이 어떻게 세상을 느끼고 있는지이다.
박쥐의 반향 정위를 박쥐의 뇌로 느끼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우리에게는 (들리진 않지만) 소리라고 느껴지는 음파를 박쥐는 '보는 것'인가 '듣는 것'인가. 혹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느끼고 있는지 그야말로 박쥐가 되어보지 않으면 결코 모른다. 나겔은 이를 '인간이 점차적으로 박쥐로 변형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두뇌는 태어날 때부터 박쥐의 뇌가 아니었으므로 이런 것을 느끼기 보다는 단지 박쥐의 삶과 행동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인간은 인간의 움벨트가 있으므로 박쥐의 움벨트를 결코 느낄 수 없게 된다.
의식 체험은 우주 전체에 걸쳐 다른 태양계의 다른 여러가지 행성에 우리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수한 형태를 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형태가 얼마나 다양하든지 어떤 생물이 의식 경험을 갖는다는 사실은 틀림없다.Thomas Nagel 『What is it like to be a bat?』 1974.
4. 참고 도서
떡갈나무 바라보기. 주디스 콜/허버트 콜 공저
저자들이 웩스쿨의 『동물과 인간 세계로의 산책Mondes animaux et monde humain』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써놓았다. 움벨트의 개념을 서술한 책 중에선 가장 유명한 책이다.
동물이 보는 세계, 인간이 보는 세계. 히다카 도시다카 저
일본 교수인 히다카 도시다카가 지은 책. 역시 웩스쿨의 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썼다. 일본에서는 Umwelt라는 용어를 따로 번역하여 '환세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